• 북극이란
  • 북극과 인간

러시아의 북극 정책과 한-러 북극 협력: 우리의 활동 영역이 북극해까지 확장되길...

위성락 주 러시아 대사관 대사

더 읽을거리 :
우리나라와 북극, 그리고 러시아

지난 11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 성명에 우리가 꼭 눈여겨 봐야할 항목이 하나 있다. “양측은 한국의 북극이사회 정식 옵서버 가입에 따라 북극 개발·연구, 환경보존, 북극항로 운항 등에 있어 상호 협력에 합의하였고, 쇄빙선(Ice breaker ship)·내빙선(Ice class ship)의 건조 및 운항 관련 새로운 분야의협력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공동 성명 제18항의 내용이다.한 편으로는 북극해와 접하지도 않은 우리나라가 그동안 북극해 진출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노력해 온 성과를 보여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북극해 최대 연안국인 러시아와 손을 잡고 북극에 본격 진출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의미 있는 조항이라 하겠다.

우리나라가 북극해와 첫 인연을 맺은 건 언제일까? 우리원양어선이 1969년부터 베링해에서 명태잡이를 시작하였다고는 하나, 베링해는 아(亞)북극해로 분류되니 이를 북극해 진출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학술적으로는 2001년 국제북극과학위원회 회원 가입에 이어 2002년 4월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군도에 다산과학기지를 설립한 이후 극지연구소 등에서 북극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스웨덴에서 열린 북극이사회는 우리나라 등 비북극권 국가들에게 옵서버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우리나라도 정부 차원에서 북극 개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상업적인 의미에서 실질적으로 북극해를 접한 것은 지난 9~10월에 있었던 북극항로 시범운항일 것이다. 현대 글로비스라는 우리 해운회사가 러시아산 나프타(석유화학 원료)를 싣고 상트 페테르부르그 인근의 우스트루가항을 출발, 러시아 쇄빙선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우리 국적선사로는 처음으로 북극해를 통과하여 광양항까지 온 것이다. 시범운항이라 다소 아쉬운 점도 없진 않았으나, 우리 국민에게 북극에 대한 관심과 상상력을 발동시키고, 해운회 사는 물론 모든 기업들에게 한 번쯤 북극 관련 사업 진출을 모색하게끔 한 일대 사건임에 틀림없다. 시범운항 성공 직후 한-러 정상이 북극해 이용과 개발에 상호 협력하기로 공동 선언한 것도 시의적절하다 할 것이다.

북극해 연안의 60%를 차지하는 러시아를 빼고 북극이나 북극협력에 대해 논의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특히,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함께 유라시아 대륙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로 서는 러시아의 협력이 필수적이고, 러시아 정부의 북극 정책에 대해서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러시아와 북극 : 역사적 개관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20세기 이전까지는 북극해를 러시아의 당연한 국경으로 생각했으므로 정부에서도 북극 및 북극항로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짜지 않는 수동적 입장을 취해 왔다. 19세기말에 이르러 무르만스크(러시아 서부 최북단 북극해 연안) 지역에 철도 건설을 시작하고, 쇄빙선을 건조하여 서부지역 항로를 이용하는 등 부분적인 개발이 시도되는 정도였다.

러시아 역사상 북극 개발에 두드러진 성과를 가져온 시기는 구소련 시절이다. 소련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북극항로의 중요성과 북극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북극을 제외하고는 러시아의 영토적 완전성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1921년에 해양연구소가 설립되고 체계적인 탐사와 연구를 시작하면서 ‘북극학’이라는 학문 분야도 탄생하게 된다.

1924년에는 세계 최초로 항공 정찰기의 도움을 받아 화물선을 운항함으로써, 헬기와 쇄빙선을 이용한 새로운 방식의 북극 해상운송방법을 고안해 냈으며, 이 방식은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1932년에는 북극항로 중앙관리국이라는 행정기관을 신설하고, 기존 관련 연구기관들을 통합하여 ‘북극’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보다 체계적인 북극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시작된 냉전 체제는 북극의 군사적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북극 개발의 경쟁자인 미국이 알래스카에 어마어마한 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구소련의 북극 정책도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게 된다. 지역개발 차원의 정책과 함께 군사전략적 요충지 건설 차원에서 북극 개발 정책이 추진되었다. 이 시기에 대규모 쇄빙선 건조와 철도 및 송유관 건설등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1991년 구소련 해체 이후 체제 정비에 급급했던 러시아에서 북극은 정부의 관심권 밖으로 벗어나게 된다. 구소련 시절 추진되던 북극 관련 사업들은 모두 중단되었는데, 이 시기에 NATO 회원국을 비롯한 세계 강국들은 군사기지 건설이나 북극항로 진출까지 검토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2000년대에 이르러 러시아는 비로소 북극 정책의 질적인 변화를 꾀하기 시작한다.

러시아 정부는 북극에 대한 이전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낙후된 북극 지역의 경제 개발에 필요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실천해 나갈 행정체제의 정비에 나선다. 이 시기에 세계 각국은 이미 1994년 UN 해양법 발효에 따라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선포하는 등 보다 공세적으로 바다에 대해 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기후 온난화로 인한 북극해의 해빙은 북극해의 경제적 이용 가치를 증폭시켜 비연안국들까지 북극해 진출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게 된다. 시대 환경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북극 정책이 러시아에 필요하게 된것이다.

북극 정책 원칙 2020과 북극 개발 전략

러시아 정부의 북극에 대한 관심이 정책적인 기반을 갖추게된 것은 2008년 9월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승인한 「러시아 연방 북극정책 원칙 2020(이하 ‘북극정책 2020’)」이라는 문건이 마련되면서 부터이다. 2013년 2월에는 다시 푸틴 대통령이「러시아 연방 북극권 개발 전략(이하 ‘북극개발 전략’)」을 공포하여 북극정책 2020을 기반으로 한 분야별 실천 과제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러시아 정부의 북극 정책 추진 체계는 완성되게 된다.

북극정책 2020은 먼저 북극이 왜 러시아의 국익과 연계되는 지부터 설명한다. 러시아에 있어 북극은 ①사회·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적 자원기지(resource base)로 활용이 가능하고, ②평화와 협력의 공간으로 보존하고, ③그 고유의 생태계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④북극 항로가 러시아의 통합 교통·통신망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
의 국익과 직결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북극정책 2020은 먼저 북극이 왜 러시아의 국익과 연계되는 지부터 설명한다. 러시아에 있어 북극은 ①사회·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적 자원기지(resource base)로 활용이 가능하고, ②평화와 협력의 공간으로 보존하고, ③그 고유의 생태계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④북극 항로가 러시아의 통합 교통·통신망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국익과 직결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북극정책 2020은 분야별 목표와 전략적 우선 과제를 포함하고 있는데, 우선 5대 분야별 정책 목표로는 ⓐ사회·경제적 개발 분야-에너지, 수산자원 등 천연 자원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자원 기지의 확충, ⓑ군사 안보 분야-군사 시설 유지 등 원활한 군사 작전 여건 제공, ⓒ환경 분야-점증하는 경제활동과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북극환경을 보호, ⓓ정보통신 분야-북극에서의 통합 정보 공간(unified information space) 구축, ⓔ과학 기술 분야-북극에서의 군사 안보, 인간의 정주 또는 경제 활동에 필요한 과학적 연구의 보장, ⓕ국제협력 분야-북극권 국가들과의 호혜적 협력 활동 등을 설정하고 있다.

북극정책 2020은 전략 추진과제를 별도로 명시하여 러시아 정부가 어떤 과제를 우선시하는 지를 강조한다. 전략적 우선 추진 과제로는 해양경계의 획정, 수색 구조 시스템 구축, 북극 연안국 및 관련 국제기구 등과의 협력 확대, 북극항로의 이용 촉진, 북극 원주민의 삶의 질 향상, 과학 연구 활동의 장려, 첨단 기술을 활용한 자원 기지의 개발, 교통 및 어업기반 시설의 개선 등이 있다.

러시아 정부는 북극개발 전략을 발표하면서 위의 북극정책을 2단계로 나누어 추진한다고 한다. 1단계는 2015년까지, 2단계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를 추진 기간으로 설정하면서 각 단계별 추진 과제를 다시 한 번 열거하고, 2단계가 완료되는 2020년에는 혁신적(innovative) 방법에 의한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사회·경제적 북극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북극 개발 전략에서 외국자본의 진출을 허용한다거나 이행 모니터링 전담 조직을 둔다는 규정 등이 눈에 띄긴 하지만, 북극정책 2020과 마찬가지로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사업이나 프로젝트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한-러 북극협력 과제
우리나라의 북극 진출에 가장 중요한 협력 파트너가 될 러시아의 북극 정책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러시아
와 어떤 일들을 해 나갈 것인가? 첫째는 당연히 북극항로 이용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우리 해운회사의 북극 항로 진출은 이미 가시화 되었다. 러시아 정부도 북극항로가 향후 유럽-동북아-북미 대륙을 잇는 대체 항로로 부상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보고, 북극항로 활성화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메드베데프 총리는 2013년 6월 바렌츠 컨퍼런스(Barents Conference)에서 향후 북극항로 이용이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 말한 바 있고, 일부 전문가들은 향후 8년간 

물동량이 30배까지 증가할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북극항로 이용이 국제법적으로 모든 국가에 개방되어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자국의 쇄빙선과 항공 정찰기 이용을 의무화하는 등 연안국으로서의 권리를 최대한 행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문 항해사 양성은 물론, 해운및 조선 선진국으로 쇄빙선이나 내빙선 건조 등에 적극 진출하여 앞으로 있을 북극항로 활성화에 착실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북극해의 에너지 자원 개발 분야에의 참여이다. 러시아는 전통적인 원유/가스 생산지역인 서시베리아, 볼가강 인근의 유전을 대체할 수 있는 북극지역 해상 광구 개발을 2011년도부터 본격 추진 중에 있다. 현재 기술적으로 북극해에서 원유 500억 배럴, 천연가스 1,300조 입방피트를 생산할수 있을 것으로 보지만, 실제 매장량은 정확히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현재 외국 기업의 투자가 부분적으로만 허용되어 있다거나, 셰일 가스 등 다른 지역의 대체 에너지 이용 여부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나, 향후 북극항로가 활성화 되면 지금까지 멀게만 느껴졌던 북극해의 천연자원이 우리 곁에 한결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극동 및 북극해 연안의 항만 개발 진출이다. 러시아의 항만 인프라는 상대적으로 취약하여 러시아 정부도 개발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고, 우리 국내 기업도 이를 통해 러시아 물류시장을 선점할 필요가 있다. 북극해 연안에 70여 개의 항만이 있지만 대부분 시설이 낙후된 소규모 항이며, 극동 지역에도 20여 개의 항만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 기업들이 항만 건설의 첫 단계인 개발기본계획 수립에 참여한다면 이후 본격적인 항만 건설이나 물류사업까지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정부도 우리 기업들이 보유한 세계적인 항만 건설 기술과 풍부한 항만 개발 경험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정상회담 첫 후속조치로 한-러
항만개발협력 MOU가 2014년 1월 모스크바에서 서명될 예정이다. 우리 항만 기업들의 러시아 진출이 가시화 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북극해를 포함한 양국 EEZ에서의 수색 및 구조에 관한 협력, 우리 원양어선의 북극해 조업 등 북극을 두고 러시아와 협력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북극을 매개로 한 러시아와의 협력은 한결같이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이다. 우리의 이익과 직결되는 손에 잡히는 사업들인 것이다. 우리의 북극 진출에 러시아의 협력이 중요한 이유를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바다를 지배한 국가가 세계를 지배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때 마침 바다 행정 통합부처인 해양수산부가 부활했고, 범정부 차원의 북극종합정책이 마련되었으며, 북극항로까지 운항하였다. 이제 북극 진출 활성화를 위한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얼마 전 한-러 정상이 약속한 대로 한국과 러시아의 북극협력이 활발히 이루어져, 우리의 활동 영역이 북극 바다 저 멀리까지 뻗어 나가길 기대해 본다.

기사 원문: 
<한국 극지 연구 진흥회, "미래를 여는 극지인" 2013 가을 + 겨울호 NO.14> 

위성락 주 러시아 대사관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