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극이란
  • 북극의 생태계

툰드라를 버텨내다

이유경 (극지연구소)

툰드라는 날씨가 변덕스럽다. 이런 변덕스러운 날씨는 툰드라 생물에게 꽤 위협적이다. 불규칙한 날씨의 변화 때문에 종종 툰드라 생물은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기상이변을 맞기도 한다. 동시베리아해에 위치한 란겔섬(Wrangel Island)에 살던 흰이마기러기는 늦여름에 몰아닥친 때 이른 눈보라로 인해 40만 마리에서 5만 마리로 줄어들었다. 1973년 가을에는 캐나다 군도에 갑작스런 폭풍이 빙판을 만드는 바람에 먹이를 구하러 이동하지 못한 사향소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그린란드 바닷가에서는 봄 폭풍이 불어서 부빙 위에서 쉬고 있던 하프물범 새끼 수만 마리가 파도에 휩쓸려 죽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북극 생태계를 ‘사고다발 지역’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위대한 툰드라 생물은 이런 예기치 못했던 비극에서 벗어났다. 란겔 섬의 흰이마기러기는 1975년 5만 마리에서 1982년 30만 마리로 회복되었고, 캐나다 사향소도 1973년 이후 증가했다. 하프물범도 그린란드 바닷가에서 터줏대감이 되고 있다.

 

툰드라 생물은 극심한 추위와 세찬 바람, 한 겨울의 희미한 빛과 한 여름의 끈질긴 빛을 오가는 태양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들이 이런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는 전략은 다채롭다. 동식물을 막론하고 가장 보편적인 전략은 몸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 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툰드라 생물은 아주 낮은 수준의 물질대사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 북극의 거미와 곤충, 지의류와 이끼는 동결 상태로 겨울을 버틴 뒤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할 무렵이면 정상적으로 물질대사를 한다.

 

툰드라 생물이 살아가는 또 하나의 생존전략은 가능한 자손을 많이 그리고 빨리 만드는 것이다. 툰드라에서는 모기가 떼를 지어 다니는데 말 그대로 셀 수 없이 많다. 매년 살아남는 다음 세대의 비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한 개체군에 많은 개체수를 유지하여 개체군이 전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툰드라의 현화 식물은 여름철 2-3주 안에 재빠르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한편 새들은 여름철 짧은 기간 동안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키우며 몸에 지방분을 쌓고 털갈이를 하면서 따뜻한 남쪽나라로 날아갈 준비를 마친다. 그린란드 자켄버그도 10여종의 철새가 여름 한철 자리를 잡는 철새 도래지이다. 6월초부터 과학 기지 주변의 바닷가와 습지에서 쉴 새 없이 새들의 지저귐이 들린다고 하는데, 8월 첫째 주에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철새들이 떠난 뒤라 적막함이 맴돌았다.

 

툰드라 동물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저마다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북극곰은 두터운 지방층으로, 사향소와 북극여우는 보온성이 뛰어난 털과 속털로 혹독한 추위에서도 열을 빼앗기지 않는다. 나그네쥐는 차가운 바람을 피해 눈 속에서 돌아다니며 북극곰은 날씨 상황을 보며 굴속에 몸을 피한다. 북극여우는 몸의 온도를 서로 다르게 유지하는데, 발바닥의 온도를 0도 가깝게 낮추어서 발을 통한 열손실을 막는다. 사향소는 겨울이 되면 최대한 움직이지 않아서 에너지 소비를 줄인다. 아주 추운 날은 조금만 움직여도 저장한 지방을 소모하며 몸의 체온을 유지해야 하므로 이럴 때일수록 가만히 견딘다.

 

툰드라 식물은 건조한 환경을 견딘다는 점에서 사막의 식물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이들은 소중한 물이 증발하지 않도록 몸을 변형시킨다. 툰드라 식물 잎은 두텁고 질기거나 털로 덮여 있어서 물의 증발을 줄인다.

 

낮아지는 기온과 짧아지는 낮의 길이, 그리고 사라지는 먹이는 여름이 지났음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툰드라 동물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한다. 나그네쥐는 눈 밑에서 생활하고, 뒤영벌은 겨울잠에 빠진다. 북극여우는 육지에서 바다로 생활 터전을 옮겨 해빙에서 북극곰을 따라 다닌다. 순록은 보다 따뜻한 곳을 찾아 이동한다. 아마 가장 부지런한 동물은 북극제비갈매기일 것이다. 북극제비갈매기는 북극에서 남극으로 자리를 옮긴다. 웬만해서는 북극을 떠나지 않는 흰올빼미는 나그네쥐의 숫자가 줄어들면 먹이를 찾아 움직이기도 한다. 툰드라의 여름은 생명으로 넘치지만, 동물들이 가을부터 서서히 남쪽을 향해 여행을 떠나 겨울에는 쓸쓸한 곳이 된다. 


< 출처 - 극지과학자가 들려주는 툰드라 이야기 >

이유경 (극지연구소)

이유경 박사는 서울대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북극다산과학기지와 알래스카, 그린란드를 오가며 연구하고 있고, 현재 국제북극과학위원회 실행위원과 국제영구동토층협회 한국대표를 맡고 있다.